요약

  • Netrek은 1992년 메타서버를 통해 알려진 게임 서버의 인원을 확인하고 참가할 곳을 찾게 했다.
  • COW의 로컬 캐시는 서버를 찾는 대체 경로였지만, Active 표시에 이용자 수는 담기지 않았다.

적군을 만나기도 전에 우주가 너무 조용할 수 있다. 1995년 9월판 COW 설명서는 Netrek 이용자에게 그럴 법한 이유를 알려준다. MetaServerCache는 접속할 수 있는 서버를 Active로 표시했다. 몇 명이 게임을 하는지는 세지 않았다. 서버는 성실하게 출근했지만, 전투에 필요한 동료와 적군까지 출석을 보장해 주지는 않았다.

게임이 여러 곳으로 퍼지면서 사람을 찾는 일이 따로 필요해졌다. 프로젝트의 설계 역사는 Kevin Smith와 Scott Silvey가 1988년에 시작한 클라이언트·서버 작업, 그리고 Berkeley 밖으로 늘어난 서버들을 설명한다. 접속 주소가 많아지면 갈 수 있는 곳도 많아진다. 곧바로 한판 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어디에 다른 사람이 모였는지가 더 쓸모 있는 정보였다.

Andy McFadden의 당시 연표에 따르면 Eric Mehlhaff의 첫 메타서버는 1992년 6월 등장했다. 같은 해 8월에는 McFadden의 MetaServer II가 뒤를 이었다. 알려진 서버들을 차례로 조회해 현재 플레이하는 인원을 모으는 방식이었다. 흩어진 게임장을 하나의 목록에서 살펴볼 수 있게 된 셈이다. 1993년 12월에는 MetaServer II가 charon.amdahl.com에서 metaserver.ecst.csuchico.edu로 옮겼다. 길을 안내하는 곳도 가끔 이사를 한다.

COW 설명서는 이 목록을 이용자가 어떻게 좁혀 볼 수 있었는지 보여준다. 사람이 있고 대기열은 없는 서버만 보거나, 대기열이 있는 곳을 추가하고, 빈 곳까지 포함할 수 있었다. 더 넓은 설정에서는 조회 시간이 초과된 곳과 연결에 실패한 곳도 나타났다. 화면에 보이는 후보는 이미 설정을 거친 결과였다.

로컬 캐시는 저장된 주소 목록으로 접속 가능한 곳을 더 빨리 찾았다. 대신 사람 수는 알려주지 않았다. 이 한계 때문에 캐시에서는 3보다 낮은 표시 수준을 3으로 취급했다. 더 좁은 필터가 필요로 하는 인원 정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Active라는 글자는 제 몫을 했다. 그 몫이 이용자의 저녁 계획보다 작았을 뿐이다.

접속 여부에도 관찰하는 위치가 따라붙었다. 설명서가 든 예에서는 미국의 메타서버가 네덜란드 서버에 닿기 어려워도, 잉글랜드에서 네덜란드로 가는 연결은 좋을 수 있었다. 시간 초과는 특정 관찰 지점과 경로에서 나온 결과였다. 다른 곳에 앉은 이용자에게는 여전히 괜찮은 목적지일 수 있었다.

COW는 양쪽에 돌아갈 길을 남겼다. 메타서버의 응답 시간이 초과되면 캐시를 시도하고, 캐시가 목록 파일을 찾지 못하면 메타서버를 시도했다. 공용 안내가 작동하지 않을 때도 작은 주소록으로 다른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다만 목적지에 관해 얻는 정보는 줄었다. 우주 전쟁에도 수첩 한 권의 실용성이 통했다.

목록을 만드는 사람의 손길은 McFadden의 1994년 공개 서버 기록에도 남아 있다. 서버가 언제 등장하고 멈췄는지는 모아 둔 FAQ 게시물의 첫 등장과 중단 기록 등을 이용해 추정했다. 이름은 바뀌고, 한 컴퓨터에서 여러 서버가 돌아가고, 관리자는 교체됐다. 주로 자유롭게 들어가 한판 할 수 있는 공개 서버를 대상으로 했으며, 최근 서버는 메타서버에 알려졌는지가 수록 기준이었다. 비공개 경기나 임시 서버는 이 목록 밖에 있었다.

Netrek의 서버 찾기는 결국 사람들이 같은 곳에 모이도록 돕는 일이었다. 인원 수는 주소에 찾아갈 이유를 붙였다. 캐시는 공동의 시야가 사라졌을 때 주소를 찾을 다른 방법을 남겼다. 컴퓨터가 준비됐다는 소식 다음에는 여전히 오래된 질문이 기다렸다. 그래서, 다들 어디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