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 2010년 창립자의 기록에 따르면 들어오는 질문의 4분의 1 이상이 생물학 분야의 진로에 관한 것이었다.
  • 공동 이메일은 질문을 적절한 교수와 대학원생에게 연결하고, 답변을 독자의 학년에 맞게 검토할 기회를 만들었다.

생물학자가 답장을 기다리는 아이에게 알려줄 것은 생물의 비밀만이 아니었다. 아이는 그 직업이 궁금했다. 무슨 수업을 들었는지,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어떤 기회로 지금의 일을 하게 됐는지. Charles Kazilek이 2010년에 쓴 글에 따르면 Ask A Biologist에 들어온 질문의 4분의 1 이상이 생물학 관련 진로를 다뤘다. 설명하러 나온 사람이 어느새 설명할 대상이 된 셈이다.

이 대화의 출발은 1997년 Arizona State University의 School of Life Sciences 웹사이트에 만든 한 페이지였다. 대학 안의 전문지식을 궁금한 사람에게 연결하는 창구였다. 2010년에는 150명이 넘는 과학자와 전문가가 질문 서비스를 지원했다. 이용자에게 그 많은 사람 중 누구를 골라야 할지 먼저 공부시키지는 않았다.

질문은 하나의 공동 이메일 주소로 들어와 적절한 교수와 대학원생에게 배정됐다. Kazilek은 이 방식이 특정인에게 질문이 몰리는 일을 막고, 답을 검토할 기회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필요하면 독자의 학년에 맞게 고쳤다. 생물학적으로 맞는 말과 어린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말 사이에 사람의 편집이 들어갔다.

메일은 시간을 조율하는 데도 유용했다. 웹사이트는 언제든 질문을 받을 수 있지만, 과학자가 24시간 자리를 지킬 필요는 없었다. 전문가는 설명을 준비하거나 교사에게 필요한 수업 자료를 찾을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접수 버튼은 야근에 강했다. 답장을 쓰는 사람에게는 여전히 다른 일정이 있었다.

그 일정의 무게는 2006년 2월 대학이 낸 소개 글에서도 보인다. 당시 사이트는 학생과 교사가 보낸 질문에 18,000건 넘게 답했다고 보고됐다. 적은 예산과 자원봉사자들이 서비스를 지탱했고, Kazilek은 주요 개발자이자 관리자로 남아 있었다. 그가 꼽은 큰 어려움 중 하나는 시간을 내는 일이었다. 감사 편지는 보람을 줬지만, 다음 답장은 누군가 다시 써야 했다.

질문함은 사이트가 다음에 무엇을 만들지도 알려줬다. 학생들이 퀴즈를 원하자 퀴즈가 생겼고, 부모와 조부모가 어린아이의 활동을 찾자 색칠 자료가 만들어졌다. 2010년 기록에는 이런 구체적인 반영 사례가 담겨 있다. 개별 편지가 여러 사람에게 쓰일 자료의 출발점이 됐다.

인터뷰와 게임, 사진, 영상, 교사용 자료가 더해지면서 과학자뿐 아니라 삽화가와 글쓴이, 번역자도 참여했다. Kazilek은 온라인 정보가 많아질수록 서로 다른 답을 발견한 사람들이 그 차이를 이해하려고 찾아온다고 설명했다. 답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는 일에서, 이미 찾은 답을 함께 이해하는 일로 대화의 범위가 넓어졌다.

2006년 그는 비슷한 활동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만드는 일만큼 오래 유지할 방법도 생각하라고 조언했다. Ask A Biologist의 역사는 그 조언을 이메일 하나의 크기로 보여준다. 누군가 편지를 읽고, 알맞은 사람에게 보내고, 어린 독자에게 돌아갈 설명을 다듬는다. 아이가 과학자에게 말을 걸 수 있게 한 것은 웹페이지와 이 조용한 일의 결합이었다.